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로 착공년도는 1903년이고 준공년도는 1905년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500.83㎡이었다. 건설공사는 모두 일본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러일전쟁으로 공사기간이 조금 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2년 관악구로 이전해 지금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본관을 개관하였다. Read more.
옛 용산신학교의 부속성당인 원효로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감독 했다. 원효로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수녀원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Read more.
명동예술극장은 '옛 명동 국립극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복원하여 새롭게 탄생한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 이 공간은 원래 1934년 일본이 영화 전용관으로 건립한 바로크 양식 건축의 명치좌 였으며, 해방후 시공관을 거쳐서 국립극장으로 사용하다가, 그 후 오랫동안 금융기관 영업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Read more.
한국은행 본관은 일본의 「도쿄역」과 「일본은행 본점」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다츠노 깅고(辰野金吾)」가 설계한 것으로 1907년 착공되어 1912년 준공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내부가 불타 버린 것을 1958년 복구하였고, 1987년 신관을 세우면서 1989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2001년 내부를 개조 화폐금융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1926년 경성부청(京城府廳)으로 건립되었다가, 광복 후 서울시청 건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건물은 6차례 증축되었다. 본관은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2호 (2003년 6월 30일 지정)이며, 1962년 증축된 북관과 1986년 증축된 신관은 새로운 청사(廳舍)를 짓기 위해 2006년초에 철거되었다. Read more.
대한제국 순종 융희 2년(1908)에 건립된 이 건물은 본래 기계시험소가 있던 터에 1906년 공업전습소가 생김에 따라 그 본관으로 지은 것이다. 광복 후 국립공업시험원 본관이 되었고,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 별관으로 쓰이고 있다. 구한말 탁지부가 설계한 몇 안되는 현존건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Read more.
조선성공회 3대주교인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1922년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대로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헌당식을 가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이다. 일제강점기 건축되어 당초의 '큰 십자가 형'이 아닌 '작은 일자형'으로 축소되었으나, 1993년 원래의 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게 되어 본래 모습대로 1996년에 완공하였다. Read more.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부민관 건물로 해방 직후 미군이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특별시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1950년 1월 국회의사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75년 9월 1일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옮긴 뒤 시민회관이 되었고, 1976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면서 그 별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1년부터 서울특별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Read more.
이 건물은 구한말 조선정부의 서양의학 도입노력의 일환으로 1908년에 세워진 대한의원 본관 건물입니다. 현재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이용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12시에서 오후 2시 사이는 점심시간)이며,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입니다. Read more.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貞洞 梨花女高 Simpson紀念館)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의 교사(校舍)이며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3호이다.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Read more.
운현궁 양관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일제가 한일합방 이전인 1907년도에 지어준 건물이라한다. 원래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건물은 그후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게 되어 현재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Read more.
고종 27년(1890)에 지은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이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심하게 파괴되어 탑과 지하2층만이 남아있었으나, 1973년에 복구되었다. 한쪽에 탑을 세웠으며, 정문은 개선문 양식이다. 일본군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하여 있던 곳이다. Read more.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국내에 돌아와 임시정부의 집무실 겸 숙고로 사용한 곳이다. 환국 이후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고 신탁통치반대운동과 남북협상 등도 이 경교장에서 결정, 추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Read more.
이 곳은 1907년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든 곳이다. 이곳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가 되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기고 1998년 11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했다. Read more.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옛 서울산업대학교) 교정에 있는 근대 건축물인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지어진 'ㅁ'자형 건물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이었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제 제12호(2002.5.31)로 지정되었다. Read more.